듀오

할머니께서 남기고 가신 큰 선물

임성민/김희수 커플      [백순영 커플매니저]

첫 만남일 : 2002-11-30 결혼일 : 2003-04-20

커플 매니저들이 가장 당황하는 일들 중에 하나가 어렵게 두 사람의 만남을 정했는데 약속장소에 당사자인 한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 일이다. 물론 이런 일은 흔한 일도 아니고 자주 있어서도 안 되지만, 한 번씩은 겪게 되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화가 잔뜩 나 있는 회원을 이런 저런 말로 위로하고 사정을 이야기하면서 일을 수습하다 보면 정말 맥이 풀리고, 내가 하는 일에 대한 회의마저 생기는 마음은 어쩔 수 없다.

작년 크리스마스 즈음의 일이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함께 시간을 보낼 짝이 없는 싱글들은 보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짝을 찾기 위한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므로 커플매니저들에겐 이때가 가장 바쁜 시기이고 또한 많은 매칭을 할 수 있는 좋은 시기가 되기도 한다.
그날은 무척 추웠고 바람까지 불어서 많은 사람들이 옷깃을 여민채 종종걸음으로 저마다의 발길을 재촉하는 날이었다.
'오늘 만나는 내 회원들 너무 추워서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날씨가 좋아야 만남도 순조로울 텐데..'
이런 저런 걱정으로 무거운 마음이 드는 밤이었다.

유난히 걱정을 많이 한 날이어서일까?
출근해 보니 전날 밤 긴급한 상황이 적힌 당직일지와 함께 급한 메모가 나의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했다. 알고 보니 남성회원은 영문도 모른 채 한 시간을 기다리다 결국 속상한 마음을 안고 집으로 향했다고 했다.

“무슨 연락이라도 있어야하는 것 아닌가요?”
“정말로 여성이 어제 약속을 알고 있기나 한 건가요?"
“이 문제는 담당 커플 매니저의 실수 아닌가요?”
“날씨도 추운데 기다리는 동안 얼마나 화가 났는지 아세요?" 등등...

나는 마치 큰 잘못을 한 어린이처럼 회원의 항의를 듣고만 있었고 죄송하다는 말만 되풀이 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 속상했다. 난 어제 사건의 영문도 모른 채 바람맞은 남성회원에게 죄송하다는 말밖에 할 수 없는 내 처지가 속상했고 아무 연락 없이 펑크를 낸 여성회원도 야속했다.
여기저기로 수소문한 끝에 나는 그 여성회원의 할머니께서 위독하시다는 것과 위독한 할머니를 뵈러 급히 지방에 내려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일주일 쯤 뒤에야 여성과 통화를 할 수 있었고 너무 경황이 없어서 연락을 취할 틈도 없어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고 미안해하는 회원에게 나는 다른 말도 할 수 없었고 위로의 말만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 날 바람맞은 남성은 그 여성과의 재만남을 원치 않아 다른 만남을 진행했는데 그로부터 한달쯤 지났을까? 그 여성과 통화를 하면서 곧 좋은 소식이 있을 거라는 얘기를 듣게 되었다.
알고 보니 할머니 돌아가시기 전에 만난 남성과 우연히 연락이 되었고 할머니 일로 마음이 울적한 상황이었을 때 그 남성으로부터 많은 위로를 받으며 상대방에 대한 호감을 갖게 되었다고 했다.

“어차피 많은 사람을 만나보아도 비슷비슷할 것 같고 제 마음을 잘 헤아려주고 다독거려줄 수 있는 사람이면 더 바랄 것이 없을 것 같아 결정했어요. 막상 마음을 정하고보니 너무 편하네요. 어쩌면 우리 할머니께서 제게 마지막으로 남겨주신 선물 같아요. 할머니께 감사드려요.“

축하의 인사를 하고 난 후 난 인연이란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만약 그날 할머니께서 위독하지 않으셨다면, 그래서 크리스마스 즈음에 약속한 그 남성과 만났다면.... 물론 그 남성과도 좋은 인연이 될 수 있었을지 아무도 모를 일이지만 할머니의 위독함은 그 미팅을 불가능하게 했고 그 일은 이 여성에게 또 다른 좋은 인연을 가져다 주었던 것이다.

나는 이 일을 겪으면서 할머니의 위독함이 그 여성에게 슬픈 일이기도 하였겠지만 결과적으로 할머니는 돌아가시면서 손녀에게 좋은 배필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남겨주고 떠나신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두 사람이 할머니께서 남기신 선물의 의미를 잘 기억하면서 행복한 삶을 살아갔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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