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한 여성 고위공직자의 빚 9억원이 화제가 된적이 있다. 남편의 파산으로 16년 결혼생활을 정리했고, 이후에도 채무 보증 때문에 번 돈을 모두 쏟아부었다고 한다. 이 소식을 접하고 아내로서의 책임감과 공직자로서의 청렴성에 박수를 보내는 이들이 많았다. 필자는 공감을 표하면서도 결혼 초에 '부부 경제' 계획을 잘 세웠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결혼 후 처음 싸움을 벌인 이유가 '돈' 때문이라는 부부가 의외로 많다. 돈은 많고 적음을 떠나 부부 사이 '주도권'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부부 갈등을 다루는 TV 프로그램에서 남편에게 기죽어 살던 전업주부가 주식 재테크로 큰 돈을 번 뒤 남편에게 당당하게 이혼을 요구하는 내용을 본 적이 있다. 부부 사이에 돈 문제로 왈가왈부한다는 게 언뜻 치사해 보이지만 사실 이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 돈은 행복의 최소 조건이다. 합리적이고 평등한 부부 경제는 행복한 결혼생활의 버팀목이다.
신혼 3개월째인 한 여성은 신랑의 카드명세서를 보고 깜짝 놀랐다. 자동차를 애지중지하는 남편이 차를 꾸미는 값으로 아내 몰래 몇 십만원을 긁은 것. 할부라서 몇 개월 더 남았다는 남편의 말에 아내는 처음으로 언성을 높였다. 결혼 후에도 독신 때의 소비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사고'를 쳤다가는 언제 접시가 깨질지 모르는 일이다.
부부 경제가 원활하게 돌아가려면 '공동계좌'를 마련하라고 권하고 싶다. 자녀 교육, 뜻밖의 사고, 노후 대책 등 결혼생활에는 끊임없이 돈이 든다. 둘의 소득 수준을 고려해 지출과 소비 계획을 짜야 한다. 공동 계좌에 차곡차곡 돈을 쌓는다면 목표를 함께 이뤘다는 성취감도 느끼고, 부부간 애정지수까지 높아질 것이다.
부부가 맞벌이를 하느냐, 한 명만 돈을 버느냐에 따라서 부부간 경제 우위가 바뀌기도 한다. 남편과 아내 모두 소득이 있으면 여성이 떳떳하게 권리를 주장하나 전업주부는 스스로가 목소리를 낮추는 경우가 많다. 가사노동 가치가 무시되는 사회 풍토 탓이다. 적은 액수라도 '가사노동 월급'을 스스로 챙기자. 남편들은 아내와 함께 쇼핑을 다녀봐야 한다. 살인적인 물가를 본다면 '도대체 벌어다 주는 돈 어디에 다 쓰는 거야'라는 잔소리가 쏙 들어갈 것이다.
부부 경제활동을 평등하게 인정받으려면 재산 취득 시 '공동 명의'로 하는 게 바람직하다. 더 적극적인 방법으로 혼인 전 합의를 통해 결혼 후 재산관계를 정하는 '부부재산계약제'가 있다. 계약이라는 말이 야박하게 들릴지 몰라도 재산 공유 및 공동 명의, 보증부담 및 중요재산 매입매각 시 사전동의 등을 따져본다면 평등부부 실현과 결혼의 안정장치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