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9월7일. 토요일날 퇴근을 하고, 직장 근처의 커피숍으로 갔습니다. 듀오에서 미팅을 하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거든요. 하지만 사실 별 기대는 하지는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커플매니저에게 지금 남편의 프로필을 소개 받았을 때 몇 가지 선입견을 가졌거든요. 첫째, 아들만 넷인 집안의 막내라니 여자 맘을 몰라줄 것이다. 둘째, 개인사업을 하는 사람이니 다소 불안할 수 있겠다. 셋째, 자기소개를 할 때 가정의 소중함을 안다고 했으니 혹시 결혼경험이 있는 사람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런 모든 선입견을 깨고 결혼에 성공했습니다. 지금부터 우리 사연 들어보실래요?
산적 같은 사람이 들어가면 전 줄 아세요
커피숍에는 제가 먼저 도착했습니다. 카운터에서 이름이 불려지기 만을 기다리는데, 전화가 왔다고 하더군요. 받아보니 지금의 신랑이었습니다.
"핸드폰이 왜 안 되요? 몇 번이나 전화해도 안 되서 커피숍으로 전화 합니다. 차가 막혀서 30분쯤 늦겠네요. 맛 있는 거 시켜 드시고 30분 뒤에 산적 같은 사람이 들어 가면 전줄 아세요"
조심해서 오라고 말하고, 자리에 돌아와 앉았습니다. 전화로 들은 그의 목소리를 가늠하며 어떤 사람일까 상상하기 시작했죠. 하지만 역시 호감이 안 가더군요. 그리고 산적 같은 사람이면 전 더더욱 싫었거든요.
바람도 쐴 겸 커피숍을 나가 30분 정도 산책을 했습니다. 돌아와보니 신랑이 와 있더군요. 내가 없어서 화가 나 가버린 줄 알았대요. 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기다렸다나요?
"산적이라길래 우락부락 할지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네요?"
"그래야 기대를 안 할 것 같아서 그렇게 얘기 했습니다"
그의 말처럼 기대를 안 했기 때문에 실망할 것도 없었어요. 차를 시켜놓고 얘기를 하는데 내가 여기 선을 보러 왔나, 직장 면접을 보러 왔나 의심이 생겼어요. 3-4번 질문하면 내가 답하고 내가 한번 질문하면 신랑이 또 답하고. 그래도 어쩐 일인지 빨리 헤어져서 집에 갔으면 하는 생각이 들진 않았어요. 좋은 감정도, 싫은 감정도 없이 저녁까지 먹고 헤어졌습니다.
그러면 제 마음이 아플 것 같아요
미팅하고 3일이 지난 뒤, 직장에서 정신없이 일하고 있는데 핸드폰이 왔습니다.
저녁에 퇴근하고 만날 수 있냐고. 하지만 약속이 있었기 때문에 안 되겠다고 했죠. 그랬더니 ‘알았습니다. 다음에 만납시다’ 하고는 끊어버리는 거예요. 만나지 못하면 전화라도 좀 길게 하지 뚝 끊어버리니까 좀 서운한 겁니다. 안 되겠다 싶어 친구와의 약속을 취소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먼저 전화를 걸어서 만나자고 했어요. 그 날 제가 아는
레스토랑으로 안내를 했는데, 정말 편안하게 대해주었습니다. 너무 좋았어요. 보기하고는
다른 남자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얘기도 정말 많이 했고요.
그 뒤로 몇 번 만남을 가졌는데 ‘다른 사람도 더 만나보라’고 얘기를 하는 겁니다. 그리고 ‘사업하는 사람이랑 살면 불안하지 않겠느냐’고도 묻더군요. 그래서 이렇게 대답했어요.
“전 두 남자를 한꺼번에 만날 배짱도 없고 또 결혼을 남자랑 하는 것이지, 직업이랑 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 쪽은 다른 여자분 만나볼 생각 있으면 만나세요. 저한테 시시콜콜 물어보지 마시고요.”
하지만 그 후에도 가끔 이 남자는 저에게 같은 질문을 해왔습니다. 그리고는 본인도 다른 만남을 가져도 되느냐고. 처음엔 그저 장난이겠거니 했는데 한번은 아주 심각하게 또 묻는 거예요.
“그러면 제 마음이 아플 것 같아요.”
제가 했던 대답이었어요. 시간이 좀 지난 뒤에 신랑이 그때 얘기를 하더라고요. 저의 그 말이 가슴에 와 닿았다고요.
평생 벗겨지지 않을 콩깍지, 우리 아이 곧 세상에 나옵니다
그렇게 우리는 그리 많은 만남을 가지지도 않고 가깝게 지냈어요. 9월말에 신랑이 청혼을 하더군요. 너무 쉽게 받아들이면 재미가 없을 것 같아서 ‘생각해보겠다’고만 했어요. 그랬더니 몇일 뒤에 다시 폰 문자로 청혼을 해오더군요. 그렇게 해서 미팅한 지 한달 만에 양가에 인사를 드리게 된 겁니다. 신랑은 저희 아버지께서 허락해 주시지 않을까봐 굉장히 걱정을 많이 했다는데 “우리 딸 잘 부탁하네.”라고 한 마디로 OK를 해주셨어요. 너무 쉽게 승낙을 받았다고 저더러 ‘재고품’이래요.
친구들이 "남자 친구는 주말도 없는데 데이트는 언제 하냐"고 물어요. 시간 많아서 데이트 많이 하는 것도 좋지만 바쁜 와중에 시간 내서 산에도 갔다 오고, 바닷가도 구경하고, 새벽에 운전연수도 신랑한테 받고, 새벽에 하는 음식점도 찾아 다니고. 그리고 결혼하기 전 신랑 생일날, 방송국에 사연을 보내서 꽃다발이랑 케이크도 선물 받고. 시간은 없어도 남들처럼 알콩달콩 재미난 데이트는 모두 다 즐겼답니다.
지금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시죠.?
우리가 둘이 가끔씩 하는 말, “우리 정말 결혼 한 것 맞어?". 10년 넘게 혼자 자취를 하다가 어느날 옆에 내 반쪽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든든한지 모르겠어요. 서로 눈 마주치면 윙크하고 그러다가 동시에 윙크하면 서로 또 웃고. 화장 지워서 눈썹 없는 얼굴도 예쁘대요.
눈에 콩 껍질 언제쯤 벗겨질 거냐고 물으면 평생 안 벗겨 질 것 같다고 해요. 살다 보니 산적이긴 한데 무서운 산적이 아니고 애교 많은 산적이더라고요. 그리고 막내 티가 많이 날줄 알았는데 오히려 장남 같고요, 장녀인 제가 오히려 막내 같아요. 그리고 신랑이 얼마나 애를 좋아하는지 얼마 안 있으면 세상에 나올 우리 애기가 보고 싶어서 못 견디네요.^^
여러분, 사람을 만나보기 전에 선입견 가지지 마세요. 그 사람을 만나면 선입견 위주로 평가하게 되니까요. 그리고 듀오에 감사 드립니다. 앞으로 잘 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