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오





1999년 겨울...
당시 설계 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김종익씨는 피아노를 무척이나 잘 치는 김은정씨와 듀오를 통해 만나게 됐다.
1남 3녀 중 장녀인 김은정씨는 어머니의 권유로 듀오에 가입하게 되었는데, 당신께서는 장남인 아버지와 결혼하여 평생을 맏며느리로 고생하셨기에 커플 매니저에게 차남이나 막내인 신랑감을 원한다고 신신당부를 하셨다. 가족사랑을 제일로 여기는 김종익씨의 아버지는 유난히 차남인 종익씨의 혼사가 맘에 걸리셨던 것 같다. 정신없이 일만 하는 아들을 바라보며 일과 성공도 좋지만 가정을 이룰 때를 놓치면 평생 후회할 것이라고 생각한 아버지는 어느 날 듀오의 팸플릿을 들고 집으로 오셨다.
하지만 그렇게 듀오를 통해 시작한 새로운 만남들에 장미빛 미래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김종익씨의 경우, 첫 번째 미팅에서 받았던 충격을 아직까지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맘에 안 들면 친구로라도 지낼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환상을 안고 있었는데, 첫 만남에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결혼이란 YES와 NO를 확실하게 할 수 있는 사람만이 살아 남는 서바이벌 게임처럼 느껴졌던 김종익씨는 김은정씨와 만날 때쯤엔 모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김은정씨의 약간은 도도하고 귀여우면서도 발랄했던 모습에 반해버린 그는 첫 만남에서 최선을 다했고, 그 결과에 따라 다시는 새로운 만남을 갖지 않겠다는 다부진 결심까지 했었다. 그녀의 웃는 모습을 보려고 만나는 시간 내내 열심히 재롱을 떨었던 김종익씨.
그녀의 집인 수원까지 데려다 주면서, 그는 진지하게 물었다. "저는 은정씨가 마음에 듭니다. 사귀고 싶은데, 은정씨는 제가 마음에 드십니까?" 그의 질문에 그녀가 당황했으리란 건 안 봐도 뻔한 사실. 주저하며 쉽게 답하지 않는 그녀에게 그는 최후의 결단을 요구했다.
"세 가지 중에 하나를 선택해 주십시오. 첫째, 내가 맘에 든다. 둘째, 50대 50이다. 셋째, 영 아니다. 이 중에서 세 번째 경우만 아니라면 저를 만나 주십시오. 저, 꽤 괜찮은 사람입니다. 대답을 안 하시면 은정씨는 못 내리십니다." 그녀는 긍정적인 대답을 한 뒤에야 그의 차에서 내릴 수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어렵게 얻어낸 사랑을 예쁘게 채워갈 만한 시간적 여유가 김종익씨에게는 부족했다. 산더미 같은 일 때문에 절대적으로 시간이 모자랐던 그는 김은정씨를 자주 만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매일 밤 전화기를 붙들고, 앞으로 시간이 생길 때 하고싶은 일들의 리스트를 만들었다. 보고싶은 영화, 가고싶은 곳, 같이 먹고싶은 것, 주고싶은 선물 등등. 이렇게 쌓여 간 그의 사랑은 , 그녀의 생일날 그 빛을 발하게 된다.
사랑을 하면 초능력이 생긴다고 하던가. 중요한 프로젝트로 인해 평소 4시간도 겨우 자던 그는 그녀의 첫 번째 생일만큼은 반드시 지켜주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과감하게 담당 과장에게 다녀올 데가 있다고 말했다. 심한 반발에 부딪힌 건 당연한 일!! 사랑 때문에 2,000억이 넘는 일을 뒤로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생일 당일 안으로 그녀에게 꽃다발을 선물하겠다던 그의 의지는 단호했다. 11시를 넘겨도 일이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자, 김종익씨는 차가운 과장의 눈초리를 뒤로하고 수원으로 차를 몰았다. 그리고 겨우 자정 10분 전에 그녀의 집에 도착, 꽃다발을 전해줄 수 있었다.
이렇게 우여곡절이 많은 데이트들을 거쳐 그들은 만난 지 126일 만에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다. 너무 성급한 결정이 아니냐는 주위의 우려를 불식시킨 것은 오직 충만했던 그들의 사랑이었다.




햇살이 따스한 4월! 그녀를 옆에 태우고 놀이동산으로 향하던 김종익씨는 화사한 봄꽃이 끊임없이 펼쳐진 길을 지나면서 프로포즈를 하게 되었다. 개나리와 진달래가 멋지게 피어있는 길에 차를 세우고는 트렁크에 미리 준비해 두었던 꽃다발과 편지를 건네주었던 것이다.
"하얀 별처럼 환한 그대 미소... 사랑해, 은정아~! 나랑 결혼해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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